선박해양공학

"척(隻) 보면 착(着)"…한국 조선의 '믿는 구석' MOERI

도운거사 2007. 7. 7. 20:28

     "척(隻) 보면 착(着)"…한국 조선의 '믿는 구석' MOERI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

 ▲ 선형시험수조에서 선박성능평가를 하는 장면. 여기서 선박의 설계를 확인한 후 조선소에서 실제 배를 짓는다.
 ⓒ 2007 HelloDD.com

"시험수조가 없어서 당신네 조선소에는 발주를 못하겠습니다."

난색을 표하는 외국인 선주 앞에서 한국 조선인의 당당한 대답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시험수조가 왜 없습니까? 우리는 나라에서 선박성능평가를 해줍니다."

한국의 조선업이 점차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외국의 선주들은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한국의 조선소에 발주하는 것을 꺼려했다. 국내 조선소가 사전성능평가를 할 수 있는 시험 설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선박을 사전 시험 없이 맡길 수는 없었다.

그 때마다 국내 조선소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 곳은 한국선박연구소. 현재 명칭은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MOERI)다.

MOERI의 작은 바다 '선형시험수조'에서 초창기 한국의 선박들이 출항했다. 지금은 각자의 수조시설을 갖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배들도 당시에는 이곳을 거쳐 갔다.

MOERI는 지금도 연구시설을 갖추지 못한 중견 조선소에 장비를 제공하고 설계와 기술개발의 경험을 전수하는 것으로 한국 조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MOERI의 대표 연구시설인 선형시험수조는 길이 200미터 폭 16미터 깊이 7미터의 규모. 1978년부터 가동했으며 꾸준한 계측장비와 프로그램 업그레이드를 통해 견고함을 쌓아가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30년의 막강한 '경험치'는 MOERI의 자랑이다.

경험 많은 연구원의 경우 설계도만 봐도 선박과 프로펠러 모양이 나오고 문제점도 바로 파악 한다고 한다.

선박성능평가란 배를 짓기 전에 설계도에 따라 실제크기의 1/20~1/40의 모형선을 만들어 시험수조에서 배의 형태와 추진 장치(프로펠러)의 성능 등을 미리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선형시험수조에서 저항(모형선을 예인해 저항 계측)·자항(모형선을 모형프로펠러에 의해 운행해 선박과 프로펠러의 상호간섭 조사) 시험을 통해 경제적인 배의 형태를 도출하고 공동 시험수조에서 추진 장치를 검사한다. 경우에 따라 해양공학수조에서 외부 환경 조건까지 설정해 선박의 운동 성능을 시험하기도 한다.

 
▲모형선을 만드는 과정(좌)과 만들어진 노란색 모형선(우). 모형선을 깎는 것은 기계가 하지만 정밀한 마무리는 
   사람의 손을 거친다.

ⓒ2007 HelloDD.com

마침 선형시험수조에 노란 모형선 한 척이 선박성능 평가를 받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연구원이 "절대 배는 찍으면 안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국내 중견 조선소에서 의뢰받아 시험 중인 배인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모델이기 때문이다. 제 자식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보는 것처럼 조선인들은 배의 일부만 보고도 자기 배를 알아본다고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궁금해 하자 연구원은 "조선소마다 좋아하는 선형 스타일이 있다"고 설명한다.

▲해양공학수조는 바람, 파도 등 외부조건까지 재현이 가능하다.
ⓒ2007 HelloDD.com

선박성능 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선박은 한 척을 지을 때마다 다 다르게 짓는 철저한 '주문생산'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박은 평가를 통해 시험과 검증을 반드시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설계상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수백억 원의 손해가 해당 조선소에 부담된다. 그만큼 MOERI의 책임감은 막중하다.

▲해양공학수조에서 바다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모습
ⓒ2007 HelloDD.com

"조선업 호황 때문에 요즘 매일 야근입니다. 그렇다고 일이 없기를 바랄 수도 없고…." 선형시험수조에서 돌아온 안해성 MOERI 해양운송안전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이 행복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안해성 선임연구원. 이름의 '해'자가 바다 '海'라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해양분야 학과는 정원이
  20명, 선박분야는 40명이었다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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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박사는 시험의뢰가 들어오면 일정을 조정해 시험을 수행하고 조선소에 실험 결과와 분석을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의 수주량이 늘어나서인지 최근에는 "정말 급하니까 내일 좀 시험 합시다"하는 전화를 받는 일도 업무 중의 하나가 됐다고.

완료한 평가의 자료를 분석하는 안 박사의 모니터 옆에 흰 돛을 단 모형 요트가 눈에 띈다. 딱 봐도 모양이 세련되고 날렵한 것이 지금 그가 다루고 있는 투박한 선박과는 다른 듯 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보급형 세일링 요트' 연구입니다. 2005년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하는 성과도 거뒀는데 현재는 조선업이 워낙 호황이라 밀려드는 시험 요청에 다른 것에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매일 야근에 이어 연구시간까지 뺏기다니, 이쯤이면 조선업 호황이 개인적으론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그의 얼굴에서 불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중들의 이목은 생산현장에 집중돼 있지만 사실 선주를 설득시키는 것은 선박성능평가 결과입니다. 설계를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훌륭한 배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은 실제 배를 짓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과는 또 다른 감동이지요."

소금기 없는 대덕에서 연구하고 있지만 안 박사도 역시 조선인의 한 사람이었다.

MOERI에는 해양·선박을 연구하는 전문 인력이 165명이다. 조선 관련 지원은 주로 해양운송신기술연구사업단과 해양플랜트연구사업단, 해상교통안전연구사업단에서 수행한다.

▲홍석원 MOERI 소장. 그는 "조선공학과 나오면
  취직이 잘된다는 얘기에 솔깃한 것도 사실"이라고
  얘기하며 크게 웃었다.

ⓒ2007 HelloDD.com
홍석원 MOERI 소장에게 현재 조선업계의 한·중·일 치열한 경쟁에 대해 물어봤다.

"한국 조선을 세계 1위로 만든 것은 뛰어난 생산기술과 공정의 우수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고급 두뇌가 조선업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앞으로도 조선분야로 인재들을 모을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승산이 있습니다."

홍 소장의 고향은 충북 충주. 우리나라의 한 가운데를 표시하는 '중앙탑'이 세워진 곳이다. 그 말은 곧 충주가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 대학에 진학하며 바다 구경 실컷 하고 싶은 생각에 조선공학과를 선택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도 산으로 둘러싸인 대덕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도 홍 소장에게는 아쉬움이 없다.

"여기서도 1년에 배(모형선) 50~60척을 짓는데 뭘."

한국 조선업계의 든든한 조력자 MOERI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국 조선업을 뒷받침하면서도 "우리나라 조선업 발전은 기술자와 연구진의 말을 믿어준 경영진들의 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형선을 만드는 목재와 이미 평가를 끝낸 모형선들. 여기서 1,000척이 넘는 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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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분야의 인재들을 대덕으로 집결시킨 모태 MOERI의 전경.
ⓒ2007 HelloDD.com
<대덕넷 정윤하 기자> yhjeong@hellodd.com
2007년 07월 03일

 

 

* 주: 본 기사는 담당 기자의 게재 승인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